킹 사이즈 더블베드 2개, 대형욕조, 스타일러, 다이슨까지 갖춘 호텔 스위트룸이 20만원.. 믿어지시나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행의 목적과 취향이 각양각색인 만큼 우선순위 또한 다양하겠지만 저는 '질좋은 숙박과 식사'라고 생각합니다. 탐험가들에게 베이스캠프가 그러하듯, 좋은 호텔과 맛나는 음식은 계획한 여행을 완주할 수 있게 해주는 에너지원이자 때로는 여행목적 그 자체가 되어 강하게 나를 이끌기도 합니다.
이번 주말 가족여행지로 낙점한 서천지역은 퀄리티가 검증된 호텔체인이 전무해 여행 블로그나 카페 평에 의존해 지역호텔, 펜션, 민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숙박시설 노후도나 청결상태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한 와이프 덕분(?)에 몇 군데로 압축한 최종 후보장소를 중복체크 하느라 여행 시작 전부터 짜증과 피로는 점점 쌓여만 갔습니다.
반복적인 마우스 클릭질만 계속하던 도중, 블로그 체험 평이 '깔끔한', '최상급', '만족한'이란 단어로 도배된 카멜리아 호텔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춘장대 해수욕장 근처 작년에 신축한 시설로 침구류는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과 서비스가 친절하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세한 시설내역을 보려고 하였지만 별도의 홈페이지는 없었고 '여기어때'나 '야놀자'에서 타입별 객실 사진과 어메니티 정도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이었습니다.
스위트룸이 20만원? 처음엔 제 눈을 의심하였습니다. 성인 2인이 눕기에도 넉넉한 킹사이즈 베드가 두개, 그리고 공기청정기와 다이슨드라이기, 스타일러가 갖춰진 신축호텔 객실이 아무리 지역의 소규모 도시에 위치해 있다지만 이 가격밖에 안되다니...거짓정보이거나 아니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인테리어나 전자제품이 조잡하고 싸구려인 모텔같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대실 옵션이 그런 의심을 더욱 짙게 했습니다.) 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여러 체험평을 읽을 수록 점점 '어느 돈 많은 사업가가 고향에 내려와 소일거리 하려고 만든 혜자 호텔' 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보와 사실이 일치한다면 정말 대박인 거고 아니라 해도 어짜피 늦게까지 관광하고 잠만 잘거라 침대만 넓으면 되지 않겠냐는 자기위안을 하며 객실을 예약하였습니다.
토요일 고속도로 상황을 감안해서 새벽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춘장대 해수욕장까지는 승용차로 2시간 반.오전 9시반 경 서천에 도착한 우리가족은 동백나무숲, 서천 국립생태원, 춘장대 해수욕장 등을 차례로 여행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해안지역 특유의 거센바람 때문인지 오후가 지나서는 얼른 객실로 들어가 따뜻한 샤워와 국물요리로 몸을 녹이고 싶다는 바램만이 간절해졌습니다. 와이프와 아이들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호텔로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고 결국 남아있던 여행일정을 취소한 체 호텔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5분 정도를 달려 카멜리아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직전에 들렸던 춘장대 해수욕장 부근이었음에도 그곳과는 달리 인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여름 성수기에는 차량으로 가득찼을 텅빈 주차장과 문을 닫아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민박집들 사이에 신축건물의 포스를 뽐내며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체크인 시간인 16시보다 2시간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조기 체크인이 가능한지 묻기 위해 주차 후 호텔 프론트로 향했습니다. 객실 하나 남아있던 것을 가까스로 예약했었던 어제 기억을 떠올리며 그냥 한번 물어나보자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였는데 프론트 응대 직원분이 너무나 당연스럽게 가능하다고 하셔서 오히려 허탈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호텔 정책인지는 모르겠지만, 밝게 웃으시며 "추운데 어서 올라가서 쉬세요"라며 호텔키를 건네주시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호텔 내부는 넓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호텔로비에는 모던풍의 소파와 탁자가 놓여져 있고 벽을 경계로 옆실에는 투숙객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토스트 기계와 식빵, 딸기잼, 원두커피 기계가 비치되어 있는 키친시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여독을 일단 푼 후에 다시 내려 와보자 마음먹고 엘레베이터를 탔습니다. 우리 객실은 5층 맨끝이었는데 문을 열자 창문을 통해 내리비치는 밝은 햇살과 파란 하늘이 기분좋게 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마자 가족 모두 우와~~ 탄성을 내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객실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훌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방의 가구며 전자제품 모두가 다 새것이었고 침대는 크고 넓은데다가 욕실 또한 지금까지 이용한 호텔객실 중 가장 크고 심지어 전신욕을 즐길 수 있는 넓은 욕조까지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스타일러와 바닥난방이었습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에 장시간 노출되어 눅눅해진 외투가 스타일러에 놓고 돌리자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을 받은 것처럼 뽀송뽀송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우리집에는 스타일러가 없어 그 경험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겨울철도 좋지만 여름철 투숙객에게는 정말 유용한 어메니티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보통 침대객실에는 없는 따뜻한 바닥에 드러누우니 살짝 들려있던 한기가 달아나면서 여독 또한 단번에 씻겨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맘같아서는 침대 대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싶을 정도 였습니다.
목욕탕 마니아로써 욕조시설을 그냥 보고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뜨끈뜨끈한 물에 온몸을 담근채로 바깥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예전에 동네 목욕탕에서 가끔 마주치던 어르신이 '청산이~'하며 노래 부르시던 그 만족감과 여유로움을 저도 약간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스파욕조가 아니라서 물살 맛사지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은 좀 아쉬웠지만 2인도 충분한 넓이와 창문밖의 광경은 꼭 한번 체험해 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을 정도 입니다.
커튼을 걷으니 여러 블로거들이 칭찬했던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다바람의 장막역할을 수행하듯 일자로 촘촘히 늘어선 나무들과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바다의 풍경, 그리고 캠핑장의 한가로운 모습이 하루종일 보아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캠핑차량이 하나둘 빈 공간을 차지하면서 생기는 다양한 텐트들의 모습과 그들을 위해 불을 밝히는 오징어 전구 등이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였습니다. 침대 옆에 비치된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를 음미하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복잡한 머릿속이 잠잠해지고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이 '이게 바로 힐링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대는 호텔내 입구앞에 '팔로모 침대를 사용합니다'라는 배너가 세워져 있었는데 정말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대나 베게 쿠션이 잠이 들기에 적당히 푹신하고 이불은 쾌적하여 머리를 대는 순간 바로 잠에 곯아 떨어졌습니다. 저는 쿠션이 너무 푹신하면 오히려 잠을 못자는 타입인데 침대와 침구류는 마치 저를 위해 준비된 것 처럼 편안함과 쾌적함이 너무나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체인호텔보다 분명 부족한 점이 있기는 했지만 월등한 장점들이 이 모든 허물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만족스럽고 즐거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끝까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완소 호텔'이지만 망하면 안되니 블로그에 널리 알리기로 결심합니다.
저는 사실 이 '카멜리아 호텔'을 최애 호텔명단에 포함시키고 남들한테 절대로 알려주지 말자 다짐 했었습니다. 호텔이 유명해지면 가격이 오르고 무료로 제공했던 서비스들이 하나둘 유료로 바뀌며 쾌적했던 환경이 점점 인파와 소음으로 넘쳐나는 덜 쾌적한 환경으로 바뀌는 것을 여러번 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와이프와 저는 친인척과 지인 그 누구에게도 이 호텔을 알려주지 않기로 다짐 또 다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가성비가 좋고 서비스를 다 무료로 '퍼 주는' 호텔이 망하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겨 블로그에 널리 알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이 호텔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습니다.
이 호텔을 특징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1. 호텔 공식 홈페이지가 없다. 정보검색 및 예약은 여기어때, 야놀자 등을 이용해야 하며 호텔에 직접 전화해 공실 확인 후 계좌입금으로 예약할 수도 있다.
2. 호텔 정말 깨끗하고 시설이 훌륭하다. 호텔매니저는 상당히 친절하고 1층의 키친시설은 빵과 커피 외에도
냉장고에 매실,식혜,생수 등이 비치되어 있고 무료이니 시간과 수량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3. 바닥에 난방이 들어와 드러눕고 싶을 정도로 따뜻하고 편안하다. 침대도 킹사이즈 베드인데다가 적당히 푹신해서 숙면을 보장해 준다.
4. 호텔키를 열고 입장하면 외투는 우선적으로 스타일러에 놓고 돌리는 것이 좋다. 이후 뽀송뽀송한 기분좋은 착용감을 경험할 수 있다.
5. 욕조를 이용하는 투숙객을 위해 베쓰솔트를 1개 무료로 제공하는데 개별적으로 욕조이용한다고 하면 여분으로 베쓰솔트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애들은 무조건 좋아한다.
6. 욕조에 필수키트를 두개 준비해 놓았는데 1회용 치약,칫솔,빗,면도기 등이 잘 갖춰져 있다. 수건도 넉넉히 비치되어 있고 드라이어가 무려 '다이슨'이다!(스위트룸만 무료로 비치되어 있고 나머지 객실은 3천원의 사용료를 내야한다고 한다.)
7. 전망이 훌륭하여 낮,밤 가릴 것 없이 멋진 사진들을 많이 건질 수 있다.
서천으로 여행을 생각하시는 분을은 정말 강추해드리고 싶은 '혜자 호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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